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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래 반도체의 큰 기회를 놓치고 있다 [최원석의 디코드]

※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후발주자는 언제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대개는 시장의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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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후발주자는 언제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대개는 시장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뀔 때입니다.

소니의 워크맨이나 트리니트론 브라운관TV 기술력은 한국이 영원히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스마트폰과 LCD·OLED TV로 바뀌면서, 시대를 빨리 읽고 집중투자에 나섰던 한국이 더 큰 기회를 잡았죠. 변화를 남보다 빠르게 파악하고 그 흐름에 올라타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었습니다.

똑같은 일이 지금 자동차산업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산업의 근간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드웨어 중심일 때는 자동차산업에 신규 참여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기존 자동차업체가 보유한 기술과 자산의 장벽(예를 들면 엔진과 뼈대, 거대공장·기술인력 등)을 뚫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달라지고 있죠. 기존 자동차회사들의 자부심이었던 내연기관과 플랫폼 기술력, 거대한 생산시설과 인력이 오히려 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GM의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메리 바라(왼쪽) CEO와 마크 로이스 사장. 로이스 사장은 지난 11월 18일 투자자 대상 콘퍼런스에서 "퀄컴·STM·TSMC·르네사스·NXP·인피니언·온세미(ON Semi) 등 7개 반도체업체와 협력해 3개의 신형 MCU 패밀리를 개발하고 있다"며 "각각의 칩 기능을 새로운 종류의 반도체에 집약함으로써, 특정 목적에만 사용되는 자동차 반도체(MCU) 숫자를 95%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motorauthority

자동차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면서, 차량 반도체도 기능분산형 MCU에서 통합ECU용 고성능 프로세서 중심으로 급변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역량을 이미 내재화한 테슬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자동차기업들이 이제부터 시작되는 새판 짜기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존 업계 최고 우등생인 도요타의 수장(도요다 아키오)조차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수정구슬이 있다면, 그걸 가장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나일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업계의 변화가 크다는 것은, 지금까지 진입 장벽에 막혀 있던 기업에도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소프트웨어와 반도체에 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 양쪽에서 엄청난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판단과 실행을 잘 못한다면, 변화 속에 찾아온 기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시장확대 기회를 놓치게 될지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은 자동차반도체의 불모지일 뿐 아니라 완성차에서도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 변화에 제대로 올라탈 수만 있다면 한국이 자동차반도체 시장의 주류로 진입하고 또 완성차에서도 미래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죠.

현재 한국은 자동차반도체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습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분야별로 1~2% 수준에 불과하죠. NXP(네덜란드)·인피니언(독일)·르네사스(일본)를 위시해 수많은 유럽·미국·일본의 자동차반도체 전문회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에서도 반도체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으니, 기존 시장을 이제라도 뚫어야 할까요? 거의 불가능합니다. 자동차반도체는 장기적인 신뢰성이 중요하고, 또 고객사(완성차·부품업체)에 맞춘 개별 사양으로 무수히 쪼개져 있거든요. 첨단기술이 있더라도, 그 기술을 무기로 시장을 새로 뚫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시장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철옹성 같던 자동차반도체 시장이 저절로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동차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의 모든 기능이 소프트웨어로 제어되고 무선업데이트(OTA·Over The Air)로 개선되려면, 차량 제어를 통합적으로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러려면 PC나 스마트폰처럼 중앙에 강력한 프로세서가 필요하겠죠.

앞으로 기존 자동차 반도체 회사의 영역 크게 줄어... 자동차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였던 한국에 큰 기회일 수도


앞서 말씀드린 NXP·인피니언·르네사스 등이 자동차에 공급하는 반도체는 주로 MCU(마이크로콘트롤유닛)라는 반도체입니다. 이것은 자동차의 기능별로 따로 붙어 있는 ECU(전자제어유닛)에 탑재되는데요. 이 ECU라는 것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경우 적으면 70~100개 정도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ECU는 자동차회사가 일괄적으로 개발하는 게 아니라 외부 부품사에서 납품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품사들은 반도체만 따로 파는 게 아니라, 부품과 그 부품을 구동하는 전자제어유닛(ECU), 유닛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어서 팔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품마다 소프트웨어가 제각각이고, 그 부품을 구동하는 ECU안에 어떤 반도체(MCU)가 들어가는지도 해당 부품업체만 알 수 있죠. 반도체 자체는 단순하고 별것 아닐 수 있지만, 하나가 빠지면 자동차 생산을 못 하는 일이 그래서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이 반도체가 어떤 부품업체에만 특화된 제품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겁니다. 범용으로 대신 끼워넣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마침 자동차산업의 근간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면서, 이런 자동차반도체의 수급 구조가 통째로 바뀌게 됐습니다.

자동차회사 스스로 차량의 하드·소프트웨어 통합 제어의 근간을 다시 세우고, 본인들이 이를 장악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죠. 1차 목적은 테슬라 차량처럼 자사 차량을 소프트웨어적으로 제어해서 폭넓은 무선업데이트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일 텐데요. 그렇게 바꾸려면 어차피 차량 기능을 통합제어해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반도체 생태계도 함께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기존 내연기관 차량은 70~100개의 ECU가 들어간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테슬라는 단 4개의 ECU만 있을 뿐입니다. 테슬라 같은 통합전자제어 방식을 따라가기 위해 만든 차량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는 폴크스바겐의 신형 전기차 ‘ID.3′도 ECU가 사양에 따라 40~50개 들어갑니다. 이것도 기존 폴크스바겐의 내연기관차 중 가장 ECU가 적게 들어간 경우인 70개에 비해 꽤 줄인 것입니다만, 테슬라 수준엔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죠. 폴크스바겐도 결국 ECU 숫자를 테슬라 수준으로 줄이게 될 겁니다.

이것은 자동차회사가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반도체 핵심도 함께 장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전문 자동차반도체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영역이 상당 부분 자동차회사 쪽으로 넘어간다는 뜻이죠.

이렇게 되면 기존의 자동차반도체 회사들은 반도체 납품이 급감하거나 혹은 과거보다 성능·단가가 떨어지는 단순·범용품만 납품하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자동차반도체 회사들 가운데 여력이 있는 회사들은 서둘러 통합전자제어용 프로세서 개발을 강화하고, 자동차 제조사들과 협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폴크스바겐은 자동차용 OS(VW.OS)를 자체 개발 중인데, 과도기적인 것이 이미 신형 전기차 ID.3에 탑재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OS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통합제어용 ECU 가운데 보디 제어와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자율주행용은 독일의 거대부품사 콘티넨탈, 일본 자동차반도체 회사 르네사스와 협업을 통해 납품받고 있고요. 콕핏용(계기판·인포테인먼트) ECU는 LG전자를 통해 납품받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동차회사의 소프트웨어 장악과 자동차반도체 성격의 변화를 보여주는 극명한 발표가 최근 GM에서 나왔는데요.

마크 로이스(Mark Reuss) GM 사장은 지난 11월 18일 투자자 대상 콘퍼런스에서 “반도체 부족 해결을 위해 북미에서 새로운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MCU)를 개발한다”고 밝혔습니다. 퀄컴·STM·TSMC·르네사스·NXP·인피니언·온세미(ON Semi) 등 7개 반도체업체와 협력해 3개의 신형 MCU패밀리(three new families of microcontrollers)를 개발해 각 칩의 기능을 새로운 종류의 반도체에 집약하는 것입니다. GM은 이를 통해 특정 목적에만 사용되도록 하는 자동차반도체(MCU)의 숫자를 95%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신형 MCU 개발을 위한 투자 대부분은 미국·캐나다에서 시행되며, 연간 1000만개의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GM이 전기차라는 하드웨어 플랫폼의 개발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플랫폼까지 장악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장악하는 계획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계획에 따라 반도체회사들을 불러모아 자동차반도체를 규격화·범용화하겠다는 것이죠. 특정용도에 꼭 필요했던 개별 반도체의 숫자가 기존에 100개 필요했다면, 앞으로는 이 가운데 95개는 없애겠다는 것입니다. 즉 특정 반도체 하나가 없어서 공장가동이 멈출 가능성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GM은 최근까지도 반도체 부족 사태 때문에 생산에 큰 차질을 빚었죠. 아예 공급의 구조를 바꿈으로써 문제의 재발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관련 투자를 북미에 집중한다는 것도 중요한데요. 공급망 안전과 자국 산업·고용의 보호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반도체회사 르네사스는 연간 1600만대 ‘팀 도요타'와 일본 최대 부품회사 덴소 연합에 편입돼 자동차 소프트웨어·반도체의 통합 트렌드에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르네사스

미래차에서 소프트웨어와 반도체는 한 세트... 한국 반도체 업계, 시장 흐름 잘 쫓아가 격변기에 점유율 높여야


이것은 GM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장악한 전기차를 만들어나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GM은 최근에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 ‘얼티파이(Ultifi)’를 공개했는데요. 차량의 모든 기능 모듈을 얼티파이라는 단일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집중시켜 빠른 업데이트(OTA)가 가능하도록 한 것입니다. GM은 앞으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통한 수익을 대거 창출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GM 신차들이 자유롭게 OTA를 할 수 있어야겠죠. 그 기반이 바로 얼티파이인 것입니다.

얼티파이는 일부 GM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내장된 OS인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와 통합될 예정입니다. 얼티파이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2023년에 GM 차량에 처음 장착돼 선보이게 될 예정인데요. GM의 3개의 신형 MCU 패밀리, 통합제어용 고성능 프로세서 등도 2023년 나오는 얼티파이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한 세트로 움직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 번 더 정리하자면, 2023년 이후 나올 GM 차량은 얼티엄(Ultium)이라는 배터리 플랫폼(LG에너지솔루션과 공동개발)의 차세대, 얼티파이라는 소프트웨어플랫폼, 얼티파이를 통해 범용화된 MCU를 기반으로 한 심플한 반도체 사용구조가 한 세트로 적용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차량에 많이 들어가는 MCU는 탑재 숫자가 대폭 줄어들고, 탑재된 것 역시 기능이 단순·범용화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 대신에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에서 일반화될 통합 ECU 전용의 반도체(SoC)와 자동차용 기본 소프트웨어(OS)는 하나의 세트가 돼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IT 분야에서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자사 OS에 맞춰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거나 혹은 특정 반도체 메이커와 제휴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똑같은 일이 앞으로 몇 년간 자동차업계에서 격렬하게 벌어질 것입니다. 테슬라처럼 반도체를 자체개발할 수 있는 회사는 그렇게 할 것이고, 자체 개발이 어려운 회사라면 남보다 더 경쟁력 있는 업체와 손잡으려 하겠죠. 반도체 회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만한 OS를 누가 만들고 있는지 잘 살펴보면서, 그쪽과 연합해 볼륨을 키워나갈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자동차 회사의 경우 GM의 얼티파이 뿐 아니라, 폴크스바겐이 개발 중인 ‘VW.OS’, 다임러가 개발 중인 ‘Mercedes-Benz Operating System(MB.OS)’도 아이디어는 비슷합니다. 도요타는 현재 외부로 발표된 게 별로 없는 듯 보이지만, 몇 년 전부터 소프트웨어개발환경인 ‘아린(Arene)’을 도요타 그룹 내 소프트웨어전문회사인 ‘우븐 플래닛’을 통해 이미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븐플래닛의 대표 제임스 커프너는 구글 자율주행차 개발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으로, 도요타 차량 개발 전체의 소프트웨어 기반을 설계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린’을 눈여겨 봐야 하는 이유는, 아린의 95%는 차량 개발·테스트용 툴킷이고, 단 5% 정도만을 떼어내 ‘아린 OS(Arene OS)’라는 이름의 차량용 OS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도요타가 차량 OS만 개발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전기차 시대를 대비해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하는 등 개발 효율을 높이고, 관련 애플리케이션의 오픈이노베이션 등을 노리는 큰 그림의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요타는 아린을 통해 차량 개발기간을 기존 40개월에서 그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것인데요. 개발기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비용이 크게 줄어들고, 시장변화에도 빨리 대응할 수 있겠죠.

물론 도요타 차량에 앞으로 아린 OS 탑재가 늘어난다면, 차종에 관계없이 아린 OS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도요타는 자사 브랜드인 도요타·렉서스(고급차)·다이하쓰(경차)·히노(버스·트럭) 외에, 스바루·스즈키·마쓰다와도 자본제휴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연간 판매량을 합치면 1600만대 정도가 됩니다. 연간 1600만대의 ‘팀 도요타’ 차량에 전부 아린 OS를 장착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규모의 경제, 혹은 사실상의 표준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또 도요타는 반도체의 경우 거대 부품업체인 덴소와 협업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아린 OS로 구동되는 자사 SDV의 통합제어 반도체는 덴소를 통해 르네사스 것을 탑재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르네사스는 연 1600만대 ‘팀 도요타’와 덴소에 편입돼 도요타·덴소·르네사스로 이어지는 일본 자동차·반도체 연합을 이룰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르네사스의 최대 주주는 INCJ라는 일본의 민관(民官)펀드인데요. 덴소·도요타는 르네사스 지분 합계 약 12%로 이미 2대 주주입니다. INCJ는 2025년까지 현재의 르네사스 지분 32%를 전량 매각해야 하는데, 이때 도요타·덴소 혹은 도요타의 우호세력이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이 큽니다.

폴크스바겐·GM·도요타, 소프트웨어·반도체 장악에 총력... 2025년 이전에 성패 드러날 듯


따라서 2025년쯤이면, 도요타가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양쪽을 모두 장악하고 자동차 시장의 맹주 지위를 이어나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도요타가 전기차에서 늦었다고 하지만, 도요타는 여전히 세계최대 판매와 이익을 유지하고 있고, 내년에 경쟁력 있는 전기차를 내놓기로 발표한 상태이죠. 20년간 하이브리드카를 양산하며 축적한 배터리·모터기술을 활용할 수 있고, 전고체배터리 기술에서는 업계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배터리 개발·생산에 16조원을 투입해 2030년 기준 연간 300만~400만대 수준의 전기차에 탑재할 양의 배터리를 자체생산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죠.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면, 자동차반도체 업계가 왜 격변에 휩싸여 있는지, 이 혼란 속에서 지위를 잃게 될 회사와 기회를 더 잡을 회사가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대로 가면 기존 자동차반도체 회사들의 먹을거리 상당 부분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자동차반도체 회사 가운데 통합제어용 ECU에 넣을 고성능 프로세서를 개발할 역량이 있는 NXP·르네사스 같은 곳은 자동차반도체의 주력이 될 프로세서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기존에도 다루기는 했지만, 테슬라 차량에 탑재된 것과 같은 초고속 연산능력을 가진 프로세서와 수준 차이가 있었는데요. 경쟁사 대비 전력소모는 줄이면서 성능은 높인 프로세서를 개발해 자동차회사의 선택을 받으려고 총력을 쏟는 중입니다.

지금은 자동차와 반도체·IT업계 모두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의 1차 도달 지점인 2025년쯤이 되면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통합제어용 고성능 프로세서로 살아남지 못한 자동차반도체 기업은 사라지거나 흡수통합될 가능성이 커 보이고요. 경쟁력을 높인 자동차반도체기업이라고 해도, 유럽·일본·미국 등 지역별로 자동차회사와 반도체회사의 빅딜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반도체강국(메모리 중심이긴 하지만) 한국의 점유율이 1%에 불과했던 자동차반도체 분야에서 나머지 99%를 점유했던 유럽·일본·미국 자동차반도체 회사들의 주력시장(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이 대부분 사라지거나 가치가 낮은 쪽으로 바뀌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이런 대격변기에 한국이 기회를 잡아야겠죠. 앞으로 대부분의 자동차에 탑재될 통합제어용 ECU 용 고성능 프로세서 시장을 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삼성전자의 경우, 스마트폰용 SoC(시스템온칩)인 엑시노스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뽑아내고, 이를 기반으로 이미 내놓은 자동차용 SoC인 엑시노스 오토 시리즈의 경쟁력을 강화해 하루빨리 대형 자동차회사 혹은 다른 신흥전기차 기업에 납품해 세력을 키워야 할 텐데요. 인포테인먼트용 칩을 일부 해외에 납품하는 것 이외에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가시화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삼성이 안 된다면 다른 반도체 기업이, 아니면 해외 업체를 인수해서라도 자동차 통합제어 반도체 분야에서 활로를 찾고 이미 가진 메모리, 스마트폰·가전 등의 시장 지배력과 시너지효과를 낼 방안을 찾아야 할 겁니다.

이미 기존 자동차반도체 회사 중 일부, 그리고 엔비디아, 퀄컴, 인텔·모빌아이 등이 자동차 통합ECU 분야의 시장 선점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구글이 최근 자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를 개발한 이유 중 하나도, SDV·자율주행차 시장에 뛰어들려고 할 때 반도체 내재화가 꼭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애플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조차 없는 애플이 자동차에 진출했을 때 파괴력이 클 것이라 보는 것도 그들이 OS와 반도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자동차회사, 소프트웨어·반도체 모두 장악하거나 반도체회사와 빨리 협업해야... 이도 저도 못하면 미래차 경쟁력 밀릴 수도

국내 유일의 글로벌 자동차회사인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폴크스바겐·GM·도요타 등 유럽·미국·일본의 자동차 최강 업체 모두가 배터리 내재화, 자동차 OS 자립, 통합제어기반 구축과 고성능 프로세서 내재화라는 공통의 길을 가고 있지만, 현대차만 약간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동차 분야 투자의 선후 관계 즉,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과, 전망은 좋지만 뒤로 미뤄도 되는 것을 철저히 구분하지 않으면, 자동차산업 격변기에 자칫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도 있죠. 현대차의 경우 반도체 개발은 현대모비스, 소프트웨어 개발은 현대오토에버에서 추진 중인데요. 폴크스바겐·도요타·GM의 경우 소프트웨어 개발 전담조직 인력만 각각 3000명에서 5000명, 그룹 전체로는 1만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차의 경우 수백명 수준, 그것도 최근에 뽑은 주니어 인력이 많기 때문에 인력의 질 면에서도 아직 과제가 많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물론 소프트웨어의 절대 인력이 많고 자동차 OS 내재화를 빠르게 추진한다고 해서,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소프트웨어 분야의 인력의 규모나 계획으로 볼 때, 폴크스바겐·GM·도요타, 그리고 자동차반도체 업계가 무엇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고 있는지는 자명해 보입니다.

2025년쯤 되면 SDV가 일반화되면서 자동차회사 간 수준 차이가 소프트웨어 품질에서 갈리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리미엄 자동차의 정의도 달라지겠죠. 차량 성능은 기본이고, 거기에다 소프트·하드웨어 연결의 매끄러움, 즉 심리스한 소비자체험이 가능한 차가 진짜 고급차로 받아들여지게 될지 모릅니다. 그때쯤이면 애플도 자동차시장에 참여하게 되겠죠. 구글 역시 마찬가지이고, 아마존이나 중국기업이 부상하게 될지도요. 자동차 분야 반도체회사의 성패도 드러나게 될 겁니다.

지금 무엇을 하느냐가 2025년 자동차 세상에서 우리의 위상을 결정하게 될 겁니다. 소프트웨어와 고성능 프로세서가 자동차를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국의 반도체와 자동차 분야가 더 높은 시장 지위를 차지하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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