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구간은 공매도 금지구간이며 빨간색표기구간이 증시안정기금발표일이다. 공매도금지만의 효과보다는 증시안정기금의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큰하락을 방어하는데에는 공매도 금지가 어느정도 효과가 있지만 상승을 하기위해서는 증시안정자금을 통한 유동성추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분할매수의 시점은 공매도금지가 이루어지고 증시안정자금이 투입되는 시점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코스닥(파랑) 코스피(보라), 코스피 50(핑크)를 모두 보아도 상승추세로 전환에 증시안정기금이 가져오는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공매도 금지만 하였던 11년에는 큰 반등을 못 준거와 대조적으로 증시안정자금이 들어오는 순간 상승추세로 전환이 보이고 그 상승은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했다. 베팅의 시점을.

과거 공매도 금지는 08년도 10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8개월 동안, 11년도 8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 3개월 동안, 20년 3월 13일 부터 12개월동안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공매도 금지는 주식시장 자체 하락세를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08년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차트를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단순히 과거 데이터(역사)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판단은 개인의 몫입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공매도 금지가 하락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08년도에는 공매도 금지를 한 시점부터 -38% 이상 더 하락하였습니다. 11년도에는 공매도 금지 시점부터 약 -8.97% 추가 하락이 있었습니다. 

코로나때 데이터로도 볼 수 있듯이 공매도금지를 시작한 후 어느정도의 하락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는 편차가 심하지만 공매도 금지는 바로 하락추세를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만약에 이번 하락에서도 공매도 금지가 나온다면 해당시점부터 급하게 매수하기보다는 천천히 분할매수하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구 분 전고점
(고)
공매도 금지 시작
(종)
최저점
(저)
공매도 금지 종료(종) 종료 후
1년
08년 코스피지수 2,085 1,439
(10월 1일)
892
(10월 27일)
1,395
(09년 5월 31일)
1,622
(10년 5월 28일)
고점대비  - -30.98% -57.22% -33.10%  
공매도 금지
시작일 대비
- - -38.01% -3.06%  
11년 코스피지수 2,231 1,806
(8월 10일)
1,644
(9월 26일)
1,907
(11월 9일)
1,914
(12년 11월 8일)
고점대비 - -19.05% -26.31% -14.52%  
공매도 금지
시작일 대비
- - -8.97% +5.5%  
20년 코스피지수 2,607 1,771
(3월 13일)
1,457
(3월 19일)
3,067
(21년 3월 16일)
2,659
(22년 3월 16일)
고점대비 - -32.07% -44.11% +17.64%  
공매도 금지
시작일 대비
- - -17.73% +110.5%  
22년 코스피지수 3,305 ?      
고점대비 - ?      
공매도 금지
시작일 대비
- ?      

총 3번의 공매도 금지가 종료된 이후 1년의 성과는 2번은 미미하였으며, 1번은 16%정도 추가상승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공매도 금지가 해제된다면 주식비중을 조금씩 줄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네요.

 

 

한동안 업데이트가 안되었던 데이터다. 업데이트한 지 2년이 흘렀다. 그동안 환율에 큰 이슈가 없어서 크게 생각을 안 했다. 세월이 참 빠르다.

최근 10년간 데이터를 참고하여도 현재 환율은 상당히 높다. 물론 여러이슈가 있겠지만 통계적으로는 그렇다. 상위 1% 안에 든다. 미래는 모르지만, 데이터 측면에서 보았을 때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21년에 환율 저점 때 데이터는 매수를 말해주었지만 나는 무시했었는데... 이번에는 행동해봐야겠다.

내가 나로서 살려고 할 때 경쟁은 필히 방해가 된다네.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ㅡ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경쟁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만이 남으니까.

경쟁이나 승패를 의식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열등감이야.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이 사람에게는 이겼어, 저 사람에게는 졌어,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네. 열등 콤플렉스나 우월 콤플렉스는 그 연장선상에 있지. 

그렇다면 이때 자네에게 타인은 어떤 존재가 될까?

언제부터인가 자네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적'으로 느끼게 된다네.

즉 사람들은 늘 자네를 무시하고, 비웃고, 틈만  나면 공격하고 곤경에 빠트리려는 방심할 수 없는 적이고, 이 세계는 무서운 장소라고 말일세. 

경쟁의 무서움이 그걸세. 설사 패자가 되지 않아도, 경쟁에서 계속 이긴다고 할지라도 경쟁 속에서 사는 사람은 마음이 편할 새가 없어.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아. 그리고 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늘 이겨야 하거든. 남을 믿을 수도 없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그들이 늘 경쟁 속에서 살기 때문이지.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하지 못한 걸세...

핵심에 있는 것은 인간관계 일세. 업무상 큰 실패를 맛봤다. 다음 날부터 회사에 가는 것이 싫어졌다.

이 경우는 모두 일 자체가 싫어진 상황은 아닐세.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비판과 질타를 받는 것, 너는 능력이 없으며 이 일에 맞지 않는다고 무능하다는 낙인이 찍히는 것,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나'의 존엄에 상처가 나는 것이 싫은 걸세. 요컨대 모든 것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문자라는 걸세.


나는 항상 경쟁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렇기때문에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열등 혹은 우월콤플렉스에 있었던 것 같다. 패자가 되지 않았더라도 늘 이기기 위해서 부단히 피곤하게 살아왔다.

 

 

동생과 이야기를 하고, 회사동기랑 이야기하다가 생각을 정리해본다.

어른들, 선배들은 항상 여러 가지 조언을 해왔다. 대다수는 틀에 박혀 진절머리 날 정도로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이다. 그리고 그 조언은 다른 조언으로 교체되면서 지속된다.

그 정해진 틀 안에서 사는 것은 나름의 안락함을 선사해준다. 좋은 고등학교, 나름 좋은 대학교, 좋은 직업, 좋은 배우자, 결혼, 나쁘지 않은 아파트, 출산 등등

나는 지금까지는 그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따라왔다. 그 보상과 인정이 좋았다. 좋은 고등학교, 나름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니 학력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았다. 좋은 직업을 구하니 또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나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굉장히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지만 유튜브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 친구는 독특하고 똑똑한 친구였다. 예술적 감각도 있었고, 머리도 똑똑했고, 손재주도 좋았다. 그리고 어른스러웠다. 그 친구는 공부를 잘하기도 하였지만, 피아노도 취미로 하였고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을 진학하였다. 그리고 영어도 독학하여 통역병으로 갔으며 무려 4개 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습하던 카드마술로 유튜브를 하고 있었다. 참 대단해 보였다. 

나는 반면에 예술적 감각은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남을 효율적으로 따라 하는 정도였다. 그 친구가 잘하는 것을 어렴풋하게 따라 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내가 잘하는 것이 없었기에 나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대안이 크게 없었다. 그리고 잘 풀렸다.

하지만 이쯤에서 둘의 차이를 생각해보니, 내 예전 베스트 프렌드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팔방미인으로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을 하고 있었고, 나는 남들이 정해준 길에서 나쁘지 않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개인적인 능력은 적당히 평범한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떤 것을 열심히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살다 보면 그럴듯한 타이틀 안에서 밖에 못 살 것 같다. 진정한 나의 능력보다는 껍데기, 타이틀, 간판이 내가 될 것 같다. 그렇기에 회사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거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회사가 없는 나는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느끼고 감사를 넘어서 의존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이라도 조금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고자 해 본다. 회사에서는 기행종처럼 여겨질 것이다. 정해진 길을 간다는 것은 남들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을 일이 적은 리스크가 없는 행위이다. 그 결과물이 나쁘지 않지만, 그럴수록 사회의 기계화되며 진정한 나는 없어지며 속은 점점 공허해질 수도 있다.

정해진 길에서 적은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안락하지만 힘든 노력을 하느냐, 여러 리스크를 감수하고자 나 자신이 성장하고자 하는가 이 둘은 항상 분리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이제 후자를 택하고자 한다. 

정해진 틀 안에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지만 리스크가 적다. 그래서 안락하다, 그래서 나태하고 공허할 수도 있다. 그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투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신기하게도 데미안이라는 책을 읽은 시기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나는 조금 별종이 돼 보고자 한다. 남의 인정과 시선이 나를 결정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분리될 수 없지만, 나는 투쟁하고 싶다. 정해진 틀을 깨고자 투쟁한다. 어른들과 선배들이 정해놓은 한 세계를 깨뜨리기 위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은 노력하는 나태함이다. 열심히 살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 열심히 해야 하고 그것은 시스템을 공고히 한다. 시스템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품고 나를 위한 시스템이 아님을 받아들였다. 시스템은 나를 나태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나태한 투쟁이라고 하고 싶다. 

"전략적 무능함"을 키우십시오. 사람들은 당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회사가 왜 이렇게 싫은지 모르겠다. 나의 현금흐름으로 참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너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아서 그런것같다.

특히 인사이동관련하여서 주기적으로 오는 일종의 불안감은 굉장히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정기적으로 인사이동이 있기때문에 그때면 모두 시끌시끌하다. 그리고 그 인사는 점점 팍팍하게 변해가고 내가 계획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나는 기본적으로 회사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회사 일도 책임 안에 있는 일만 신경쓰고 싶다. 그 일에있어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긴하지만, 오지랖넓게 이것저것하기에는 멀티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신경써야하는 개인적이고 소중한 내 일들이 너무 많다. 지금은 그런것이 어느정도 가능한 상황인데, 그런게 어려워질 것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일찍부터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근데 정도의 차이이지 모두가 다 불안해한다.

무튼 나는 굉장히 불안해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할때-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인생관과 다를때 오는 괴리감을 어떻게 해야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회사연봉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다행이도 실직의 위험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내 인생에 최대한으로 집중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회사는 사이드메뉴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 다르게 회사가 메인메뉴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게되면 나의 생각도 바뀌게 될 것이다. 현실에 수긍하면서 그저그렇게 나이들어가고 그 모습은  지금 과장, 차장들과 크게 다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삶을 비하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방향은 확고하게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굉장히 속상할 것이다.

나는 종종 회사에서 너무 숨막힌다. 월급이라는 마약에 취해버려 그냥저냥 나이들어갈까봐 가끔은 두렵다. 작은 나만의 목표조차 잃어버리고 기계처럼 인생의 대부분을 소모하는 그런 삶은 내가 지양하는 삶이다.

그렇기에 나는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더 갈망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열심히하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이다. 가끔씩은 이런 예민함에 죄책감이 들다가도, 원동력으로 쓰기도 한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 나는 회사를 위해서 살고 싶지 않다. 물질적 성과는 없고 적당한 격려만 있는 그럴싸한 보상에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의 메인이 회사이고 싶지 않다. 에피타이져정도이고 싶다. 그저 신용을 바탕으로 좋은 레버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도구정도이고 싶다. 

나는 더 견고하게, 더 평온하게, 더 열심히, 더 꾸준히, 더 처절하게 벗어나려고 노력해야한다. 이 늪같은 직장인의 삶이란, 노예의 삶에서 정말 벗어나고 싶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고 싶다. 그 숲이 작아도 괜찮다.

성공할때에 그 앞에 드라마같은 서사가 있으면 좋다. 꿈 혹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도중 힘이 들때에는 성공 앞에있는 드라마틱한 서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가 하는 고민, 난관을 극복하는 드라마의 아주 초반부이다.

운이 좋을때까지 계속하면 그때가 성공하는 때라고 하더라. 열심히 잘해야한다는 가정이 있겠지만, 포기한다면 운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묵직하게 밀고 나가보자.

그동안의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투쟁하고, 승리하여야 성공이 반겨줄 것이다. 22년 반갑다. 잘 부탁한다.

 

 

많은 것들이 관점에 의해서 다르게 보인다. 네모의 꿈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들었던 노래이다. 그때에는 당연히 별생각 없이 노래가 좋았다. 

하지만, 최근 다시 들어보면서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내 상황이나 관점, 고민들이 당연히 반영되었다.

 

모든 것이 네모이다. 그리고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해"라고 한다. 그러나 부속품들은 죄다 온통 네모난 것들 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도전을 해야 한다. 각종 멋있고 교과서적인 교육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고 그들의 바람을 교훈 삼아 이야기한다. 사실 그건 그들의 꿈일지 모른다.

이 사회의 구조는 네모이다. 그리고 부속품들은 죄다 네모이다. 추억까지도 네모이다. 아주 정형적이고 다분히 관습적이다. 둥글게 살아야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모두 네모이다. 하지만, 주위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 뿐이다.

사실 둥글게 살아야한다는 말은 네모의 꿈일지 모른다. 그들의 말, 그들의 꿈을 그럴싸하다. 그 모습이 네모인 것은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애써 부정할수록 더 각진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한해의 마지막날이다. 잘한 것도 엄청 많고, 아쉬운 점도 엄청 많다. 요새 투자 관련하여서 새로운 지식 습득이 제한적인 것이 큰 아쉬움이다. 다시 루틴 하게 공부하면서 배울 것을 찾아야 한다.

새롭게 습득하고 배운 것들은 어느새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공모주, IDO, 가상자산, NFT 등... 더 새로운 것을 찾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할 때마다 하나씩 찾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떤 곳에서 추가 수익을 찾아야 할까.

더 고민해봐야겠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날아서 신에게 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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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느낌이긴하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문구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내가 깨고자하는 세계는 무엇일까. 그 밖에는 무엇이 있나.

심리적인 압박이 다가올때마다 무엇을 위해 이 투쟁을 하는지, 남들과 다르기로 마음먹었는지 클래식을 들으며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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