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자기 기만
○ 유전자가 부추기는 자식 사랑
번식이라는 목적으로 진화가 고안해 낸 사랑은 사실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작동하는 신경 기관의 매커니즘이다.
예를 들어, 신경 과학자들은 어미 쥐가 새끼를 핥아줄 때마다 어미 쥐의 뇌에서 도파민 분비가 유도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도파민은 뇌의 보상체계에서 작동하는,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번식을 위해선 짝짓기를 해야하므로 사랑이란 감정은 짝짓기를 유도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뇌 회로에 작동하는 신경전달물질은 마치 마약처럼 작동하며, 중독과 같은 자기만족은 성관계라는 궁긍적인
쾌락에서 절정을 맞게 된다. '사랑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옥시토신은 엄마와 아기의 유대 관계가 깊어질수록 많이 분비되며 연인 사이에 스킨십을 할 때도 분비되어 애정을 고무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유전자 번식이라는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지상 과제를 수행하게 만드는 자기 만족 기제다.
연구에 따르면 근친도 수치와 보육자가 아동에게 투자하는 정도가 비례한다고 한다(본인 목숨을 포기하기 위해선 자식 2명과 비교) 부모와 한명의 자식은 유전자의 50퍼센트를 공유한다. 근친도는 0.5이다. 부모의 관점에서 최적의 공급량이 아닐 수 있다. 부모는 여러 자식에 효율적으로 투자해 효용을 극대화하기를 원하는 반면, 자식들은 자신에게 최대한 투자가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러한 부모-자식 갈등은 자식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표출된다. 태아는 최대한 영양분을 받으려고 하고, 산모는 이미 태어나있는 자녀 혹은 미래의 자녀를 위해 공급되는 자원을 조정하려고 한다. 우리 몸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혈액에 많아지면 췌장에서는 인슐린을 분비함으로써 혈당을 세포로 유입시켜 에너지를 만들거나 영양분 형태로 저장하게 된다. 임신 중에는 당연히 태아도 포도당을 필요로하는데, 이때 태아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포도당을 빼앗아 오기 위해 어머니의 인슐린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분비한다. 인슐린과 닮은 형태의 단백질인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에서만 만들어진다. 엄마의 절반은 X. 아빠의 절반은 생존을 위해 !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서. 즉, 아버지의 유전자가 태아에게 영양분을 더 달라고 어머니에게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는 태아가 산모로 부터 많은 영양분을 빼앗아 건강하게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이다.
산모는 이에 대항해 인슐린을 더 많이 분비해 자기 세포에 포도당을 유입시키려고 하면서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임신성 당뇨다.
○ 자식살해
자식살해는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나는데, 이또한 번식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진화적 계산에 따라 이루어진다.
어미의 나이가 낮을수록 향후 임신가능성이 높기에 살해율이 높았다. 아이의 나이가 많을수록 살해당할 가능성이 낮았다. 이는 방어력 증가보다는 성장한 자식일수록 번식 가치가 더 높게 계산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기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을 통해 자신이 건강하며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부모의 선택을 받고 살해당할 위험을 피하는 전략을 쓴다. 통통한 아기들을 보면 귀엽다고 느끼는 것 역시 건강한 아이를 선별하기 위해 진화해 온 뇌의 생물학적 반응이다. 귀엽다고 여겨지는 아기들의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 신호가 감각적 덫처럼 부모의 보살핌을 유도한다.
형편이 좋지 못할 때는 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짝짓기에 있어서 남자의 능력이 보다 중요한 세상에서 부유한 아들은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가난한 경우에는 아들보다 차라리 딸이 결혼해서 자손을 가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상속에서도 부유한 가정에서는 아들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었고, 가난한 가정에서는 딸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선별적인 투자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생리학적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 반대가 끌리는 이유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 냄새(페로몬)를 통해 유전자(MHC 변이)가 다른 짝짓기 상대나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다.
페로몬은 자신과의 유전학적 유사성을 판별하는 데도 사용된다. 짝짓기 대상으로 자신과 차이가 나는 상대를 선택함과 동시에 유전학적으로 근친인 상대는 그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화학적 충동과 유전학적 차이점이라는 매력에 이끌려 결혼하고 나면, 뜨거웠던 감정은 사라지고 차이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생물학적인 배경을 알고 나면 이혼 사유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원인이 성격 차이라는 것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관심 대상은 유전자의 성공적인 번식이지 개체의 행복한 삶이 아니다. 행복한 부부의 삶과 행복이 유전자 입장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근친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 인간은 진화적으로 자기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끌리도록 설계된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생물학적 장치를 통해 발현됩니다. 특히 **주조직 적합성 복합체(MHC,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와 같은 유전적 마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MHC가 다를수록 자손은 더 강한 면역 체계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인간은 상대의 냄새 등 무의식적인 신호를 통해 MHC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친이 발생하는 이유는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1. 생물학적 이유
- 가까운 환경에서 자란 경우의 유사성 효과
인간은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 다른 유전자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지만, 가깝게 자란 가족 구성원 간에는 종종 비슷한 행동 패턴이나 유사성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진화적으로 조정되지 못한 일종의 착각입니다. - 근친회피 메커니즘의 실패
대부분의 사회적 동물은 근친회피(inbreeding avoidance) 메커니즘을 통해 근친을 피합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으며, 특정 환경적·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심리적 요인
- 가까운 사람에 대한 긍정적 감정의 왜곡
가족 구성원 간의 친밀감은 자연스럽게 신뢰와 애착을 형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하지만 이 감정이 왜곡되면 낭만적 감정으로 잘못 전환될 수 있습니다. - 가족 이외의 선택지 부족
고립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다른 선택지를 찾기 어려워 가족 구성원을 대상으로 친밀감을 느낄 가능성이 증가합니다. 이는 과거 소규모 공동체에서 발생한 사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심리적 트라우마와 학습된 행동
일부 근친 관계는 건강하지 못한 가족 구조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연관될 수 있습니다. 학습된 행동이나 외부의 부정적 영향도 원인일 수 있습니다.
3. 사회적 요인
- 고립된 문화나 환경
역사적으로 고립된 공동체에서는 결혼 가능 대상이 제한되어 근친관계가 더 흔히 발생했습니다. 또한, 일부 문화권에서는 특정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근친 결혼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예: 왕가의 혈통 보존). - 사회적 금기의 부족
대부분의 현대 사회에서는 근친이 금기시되지만, 사회적 억제가 부족하거나 가족 내 권력 구조가 왜곡된 경우 이러한 금기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근친의 부작용과 문제점
근친으로 인해 유전적 다양성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열성 유전자의 발현 가능성을 높이고, 자손의 건강 문제를 초래할 위험성을 증가시킵니다. 따라서 진화론적으로 근친은 장기적으로 불리한 전략으로 간주됩니다.
근친이 발생하는 이유는 단순한 생물학적 요인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요인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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