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이야기를 하고, 회사동기랑 이야기하다가 생각을 정리해본다.

어른들, 선배들은 항상 여러 가지 조언을 해왔다. 대다수는 틀에 박혀 진절머리 날 정도로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이다. 그리고 그 조언은 다른 조언으로 교체되면서 지속된다.

그 정해진 틀 안에서 사는 것은 나름의 안락함을 선사해준다. 좋은 고등학교, 나름 좋은 대학교, 좋은 직업, 좋은 배우자, 결혼, 나쁘지 않은 아파트, 출산 등등

나는 지금까지는 그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나름의 최선을 다해서 따라왔다. 그 보상과 인정이 좋았다. 좋은 고등학교, 나름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니 학력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았다. 좋은 직업을 구하니 또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나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굉장히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지만 유튜브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 친구는 독특하고 똑똑한 친구였다. 예술적 감각도 있었고, 머리도 똑똑했고, 손재주도 좋았다. 그리고 어른스러웠다. 그 친구는 공부를 잘하기도 하였지만, 피아노도 취미로 하였고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을 진학하였다. 그리고 영어도 독학하여 통역병으로 갔으며 무려 4개 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습하던 카드마술로 유튜브를 하고 있었다. 참 대단해 보였다. 

나는 반면에 예술적 감각은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남을 효율적으로 따라 하는 정도였다. 그 친구가 잘하는 것을 어렴풋하게 따라 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내가 잘하는 것이 없었기에 나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대안이 크게 없었다. 그리고 잘 풀렸다.

하지만 이쯤에서 둘의 차이를 생각해보니, 내 예전 베스트 프렌드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팔방미인으로 하고 싶고 잘하는 것을 하고 있었고, 나는 남들이 정해준 길에서 나쁘지 않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개인적인 능력은 적당히 평범한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떤 것을 열심히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살다 보면 그럴듯한 타이틀 안에서 밖에 못 살 것 같다. 진정한 나의 능력보다는 껍데기, 타이틀, 간판이 내가 될 것 같다. 그렇기에 회사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거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회사가 없는 나는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보잘것없다는 것을 느끼고 감사를 넘어서 의존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이라도 조금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고자 해 본다. 회사에서는 기행종처럼 여겨질 것이다. 정해진 길을 간다는 것은 남들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을 일이 적은 리스크가 없는 행위이다. 그 결과물이 나쁘지 않지만, 그럴수록 사회의 기계화되며 진정한 나는 없어지며 속은 점점 공허해질 수도 있다.

정해진 길에서 적은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안락하지만 힘든 노력을 하느냐, 여러 리스크를 감수하고자 나 자신이 성장하고자 하는가 이 둘은 항상 분리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이제 후자를 택하고자 한다. 

정해진 틀 안에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지만 리스크가 적다. 그래서 안락하다, 그래서 나태하고 공허할 수도 있다. 그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투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신기하게도 데미안이라는 책을 읽은 시기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나는 조금 별종이 돼 보고자 한다. 남의 인정과 시선이 나를 결정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분리될 수 없지만, 나는 투쟁하고 싶다. 정해진 틀을 깨고자 투쟁한다. 어른들과 선배들이 정해놓은 한 세계를 깨뜨리기 위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은 노력하는 나태함이다. 열심히 살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 열심히 해야 하고 그것은 시스템을 공고히 한다. 시스템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품고 나를 위한 시스템이 아님을 받아들였다. 시스템은 나를 나태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나태한 투쟁이라고 하고 싶다. 

"전략적 무능함"을 키우십시오. 사람들은 당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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